그녀를 보았을 때
박정진
내가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,
나의 아픔인 줄은 몰랐습니다.
내가 그녀를 두 번째 보았을 때,
고통이며 열병인 줄을 몰랐습니다.
그녀가 그리움이며 본향인 줄은
더더욱 몰랐습니다.
내가 그녀를 다시 보았을 때,
떨림이기에 완성인 줄을 몰랐습니다.
내가 그녀를 다시 한 번 보았을
떄,
구제해야할 마지막 중생이
나 자신인 줄을 몰랐습니다.
그래서 그녀를 다시 한 번 바라보며
떨리는 사랑으로
기구하는 아픔으로
우주보다 더 큰
침묵으로
꼬옥 끌어안아 봅니다.
어느 소설에서 '그녀를 보았을 때'라는 시를 발견했다. 소설속에 나오는 시는 그냥 스킵하고 넘기는데 왠지 모르게 이 시가 눈에 밟히더랬다. 그래서 다시 페이지를 넘겨 읽어보았다. ''아픔인 줄은 몰랐습니다.''라는 표현이 내 심정과 맞아떨어지는 듯 했다. ''마지막 중생이 나 자신은 줄을 몰랐습니다.'' 이 시를 읽고 나서야 그 마지막 중생이 나인 줄 깨닫게 되었다.